수행 소개

선 수행의 네 가지 방법 :  좌선, 절, 염불, 공안 수행

선 수행의 네 가지 방법 :
좌선, 절, 염불, 공안 수행

좌선

전통적으로 중국과 한국에서는 스님들만 좌선을 해왔는데 대개 일년 중 여섯 달의 안거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선 수행자들은 직장이 있거나 사회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재가 수행자들은 좌선을 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할 수 없기 때문에 현대의 선에서는 “마음의 좌선”을 강조합니다.

 

“마음의 좌선”이란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저 매 순간순간, 자신의 의견과 조건, 상황을 내려놓으세요. 그러면 명징해질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할 때에는 그저 하십시오. 이것이 일상의 선입니다.

 

이 순간 명징함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자기자신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 관음선종에서는 이를 대자대비 대보살도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대자대비 대보살도의 가르침은 아주 중요합니다. 좌선을 하여 명징해지면 자신의 올바른 상황, 올바른 관계를 볼 수 있게 되고 스스로와 모든 중생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절을 하는 이유

대봉선사

절을 하는 수행은 몸과 마음이 빠르게 하나가 되게 합니다. 또한 게으른 마음이나 욕망, 화를 없애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잠을 자는 동안, 몸은 침대에 누워있지만, 마음은 날아다니며, 어디론가로 갑니다. 라스베가스나 뉴욕 혹은 바다로 갈수도 있고, 괴물에 쫓겨다닐 수도 있습니다. 몸은 침대에 있는데, 의식은 벌써 어디론가로 갔습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날 때, 우리의 의식과 몸이 재빨리 하나로 연결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집안을 멍하니 헤매고 다니고, 커피를 마시고, 잘 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러다 천천히, 천천히 의식과 몸이 다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제일 처음 108배를 합니다. 이 108배를 통해 우리의 몸과 의식이 빠르게 하나가 됩니다. 그래야, 명징하게 되고, 분명하게 작동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108배를 합니다. 108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나온 숫자입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 속의 108가지 더러움을 의미합니다. 혹는 마음속에 있는 108개의 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절을 한번 할때마다 더러움이 하나씩 없어지고 내 마음속의 한 칸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절 수행은 매일 아침에 하는 참회와 같습니다. 낮에나 잠을 잘 때나, 우리의 의식은 어디론가로 날아갑니다. 또한 무언가를 만듭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많은 것을 만듭니다. 그러면, 참회를 합니다! 그래서 108배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참회하고, 바보같은 생각을 없애는 것입니다.

 

좌선을 할 수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강상의 한계가 있거나 너무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좌선을 하면 그런 분들은 의식을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절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몸을 사용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절을 하는 목적 즉 방향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작은 나를 내려놓고, 나의 본성을 찾아 모든 중생을 돕겠습니다. 어떤 운동이든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할 수는 있지만, 그저 운동이라면, 그 방향성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몸매를 위해서 혹은 경쟁에서 이기기위해 할 수 있지만,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한 지점을 가리킵니다 – 어떻게 나의 본성을 찾아 고통 속에 있는 중생을 구할것인가.

 

절을 통해 우리의 업을 소멸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없애고, 아주 분명하게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와, 나의 본성을 깨닫고,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절수행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화가 많거나, 욕망이나 게으른 마음이 많은 사람들은 매일 300배나 500배, 아니 1000배를 하십시오. 그러면, 중심이 강해져서 자신의 업을 조절할 수있고, 업을 없앨 수도 있으며 미음이 분명해집니다. 이것이 수행자와 세상을 돕습니다.

염불은 왜 하는가

숭산 행원 선사

어느 일요일 저녁, 뉴욕 국제선원에서 법문이 있은 후에 한 제자가 숭산 스님께 질문 했습니다.

“염불은 왜 하는 겁니까?

좌선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가 않습니까?”

 

선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주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함께 절히고, 함께 염불하고, 함께 공양하고, 함께 좌선하고 그 밖에도 선원에서 모든 일을 함께 한다.

 

우리는 왜 함께 수행을 해야 하느냐?

 

모든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업을 지녔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상황이 각기 다르고 조건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스님 이고, 어떤 사람은  학생이고, 어떤 사람은 공원이듯 말이다. 항상 깨끗한 마음을 지니는 사람도 있고, 가끔 불안히고 불만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며, 여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내 생각이 옳다!’ 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선사들까지 그러하다. 열 사람의 선사 마다 제 각기 다른 지도방법을 갖고 있으며, 그들은 자기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은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졌고, 동양인은 동양식 사고방식을 가졌다. 다른 견해에서 다른 행동이 나오고 다른 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네가 너의 생각을 고집하면 너의 업을 다스리기가 매우 힘이 들게 되고 너의 삶이 고통으로 남는 것이다. 너의 틀린 견해가 계속되는 한 너의 나쁜 업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원에서는 우리는 함께 살고 함께 수행하며, 모두가 선원 청규대로 따라 한다. 남달리 좋이하는 것과 싫어히는 것을 구별하는 사람들도 우리에게 오면 점차 그런 것을 떨쳐 버린다.

 

새벽 5시 30분에 전원 모두가 백팔배를 ‘함께’ 하고 ‘함께’ 공양하고 ‘함께’ 일을 한다. 어떤 때는 절을 하기가 싫을 때도 있겠지만, 이것이 선원 청규이기 때문에 따라 하는 것이다. 또 어떤 때 너는 피곤해서 자고 싶지만, 좌선하러 가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좌선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공양을 할 때는 절 방식 내로 네 개의 발우에다 먹고, 공양이 끝난 뒤에는 차를 부어 검지손가락으로 씻게 되어 있다. 처음 몇 번은 이런 방식 대로 차를 마시는 것을 모두 싫어했었다.

 

캠브릿지 선원에서 온 젊은이 하나가 내게 와서 화를 냈다.

“이런 식으로 먹는 게 싫습니다! 그 차 속에는 찌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건 도저히 마질 수 없어요!”

내가 그에게 말했다.

“[반야심경]을 아느냐?”

“네.”

“경에서 이르기를,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고 하지 않더냐?”

“네.”

“그런데 왜 그 차를 못 마시겠다는 거지?”

“왜냐하면 더럽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의 웃음소리)

“왜 그게 불결하다는 거냐? 그 찌꺼기들은 이미 네가 먹은 음식물에서 나온 것이다. 만일 네가 그 차를 더럽다고 생각히면 더러운 것이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먼 깨끗한 것이다.”

그 젊은이가 말했다.

“선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 차를 마시겠습니다.” (웃음소리)

그래서 우린 함께 살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각자의 사견과 개인적 인 조건, 그리고 개인적인 상황 모두 끊어 내는 것을 뜻한다. 그럼으로써 우린 빈 마음이 되는 것이다. 본래의 백지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진정한 생각과 진정한 조건, 진정한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공안 수행

공안 (중:쿵안, 일:고안, “공공의 경우”란 의미) 은 고대 중국의 선수행자들 사이의 법거량을 기록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공안수행의 중요한 부분은 스승이 제자가 공안의 요지를 얼마나 잘 파악했는지를 점검하는 사제 간의 은밀한 교류입니다. 공안은 공안질문이나 사용하는 언어와 문답이 외견상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여 특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구나 분석되지도 않고, 개념적으로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공안은 생각을 끊음으로서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분명한 역할을 하도록 우리를 돕기 위한 실험적인 도구입니다. 이것은 선수행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여기에 유명한 예가 있습니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조주가 “무”라고 답했다.

이것이 공안입니다. 그리고나서 공안과 함께 연계된 질문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가 불성이 있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공안과 질문이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온 세상이 불바다이다; 어떤 삼매를 통해 이 불바다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공안과 연계된 짧은 설명이 있는데, 시의 형태를 띄기도 합니다.

어떤 공안들은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또 다른 것들은 스승에 의해 인터뷰 방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선종의 일부 종단에서는 공안을 참선의 single-pointed focus(한지점에 집중하는 것)로서 사용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공안 수행은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수행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 오직 모를 뿐-과 지혜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공안은 수행 중이나, 일상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도 있으며, 그래서 공안을 들고있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안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신실하게 수행한다면, 공안 인터뷰는 저절로 됩니다.

 

인터뷰 방에서는 절을 하고, 바로 앉는 것을 포함한 정해진 예절이 있습니다. 스승은 첫 인터뷰 때 예절을 통해 여러분을 도울 것이고, 그 후에도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만큼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공안 수행

공안 (중:쿵안, 일:고안, “공공의 경우”란 의미) 은 고대 중국의 선수행자들 사이의 법거량을 기록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공안수행의 중요한 부분은 스승이 제자가 공안의 요지를 얼마나 잘 파악했는지를 점검하는 사제 간의 은밀한 교류입니다. 공안은 공안질문이나 사용하는 언어와 문답이 외견상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여 특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구나 분석되지도 않고, 개념적으로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공안은 생각을 끊음으로서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분명한 역할을 하도록 우리를 돕기 위한 실험적인 도구입니다. 이것은 선수행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여기에 유명한 예가 있습니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조주가 “무”라고 답했다.

이것이 공안입니다. 그리고나서 공안과 함께 연계된 질문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가 불성이 있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공안과 질문이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온 세상이 불바다이다; 어떤 삼매를 통해 이 불바다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공안과 연계된 짧은 설명이 있는데, 시의 형태를 띄기도 합니다.

어떤 공안들은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또 다른 것들은 스승에 의해 인터뷰 방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선종의 일부 종단에서는 공안을 참선의 single-pointed focus(한지점에 집중하는 것)로서 사용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공안 수행은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수행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 오직 모를 뿐-과 지혜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공안은 수행 중이나, 일상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도 있으며, 그래서 공안을 들고있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안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신실하게 수행한다면, 공안 인터뷰는 저절로 됩니다.

 

인터뷰 방에서는 절을 하고, 바로 앉는 것을 포함한 정해진 예절이 있습니다. 스승은 첫 인터뷰 때 예절을 통해 여러분을 도울 것이고, 그 후에도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만큼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